아들이 말로 꺼낸 해적
아들과 길을 가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이 곧바로 실행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기 생각을 말로 정리하는 힘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말로 꺼내는 동안 내 안의 생각이 정리되고, 그것을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기술과 생각의 관계를 설명하는 동안, 아이의 관심은 훨씬 구체적인 곳에 있었다. 만들고 싶은 게임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나는 그러면 한번 해보라고 했다. 휴대폰에서 ChatGPT를 켰고, 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해적 모자 같은 걸 쓰고 있고 얼굴은, 얼굴은 노란색.”
아이는 할로윈 호박 같은 표정, 양손의 갈고리, 해적 옷을 차례로 설명했다. 한쪽 다리는 나무이고 다른 쪽은 금이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멋있게 그려 달라는 말을 붙였다. 캐릭터의 이름은 푸나폰이었다. 대화 기록에는 말을 고쳐 하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한 흔적도 남아 있다. 완성된 기획서를 읽은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 있는 모습을 입으로 꺼낸 문장이었다.
그 설명이 그림이 됐다. 노란 호박 얼굴과 갈고리, 서로 다른 두 다리가 한 장의 콘셉트 이미지에 모였다. 이때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리듬게임처럼 보이는 장면도 들어 있었다. 아직 실행되는 게임은 아니었다. 아이가 상상하는 세계를 먼저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그림이었다.
그림이 나오자 요청이 하나 더 생겼다. 공격할 때 양쪽 갈고리가 늘어나는 모습도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결과가 생기자 다음에 바꾸고 싶은 부분이 보였다.
요즘 내가 AI의 변화를 설명할 때 자주 돌아가게 되는 장면이 이것이다. AI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내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생각을 한번 실행해 볼 수 있는 범위다. 아들이 한 말이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을 보면서 다음 말을 하게 되는 과정. 이 작은 대화가 그날 영상과 게임, 웹사이트로 이어졌다.

어렵게 해 달라는 말의 다음 문장
그림을 만든 뒤에는 ChatGPT의 Work 환경으로 옮겼다. 푸나폰과 보프가 리듬게임 대결을 벌이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는 자신의 캐릭터가 폭주한 뒤 공격하게 해 달라고 했고, 조금 어렵게 해 달라는 조건도 붙였다.
‘어렵게’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적이 강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화면이 복잡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다시 말했다. 리듬게임을 누를 때, 누르기 어려운 속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설명은 빠르게 내려오는 노트와 연타, 동시에 눌러야 하는 박자를 정하는 기준이 됐다.
첫 결과는 32초짜리 영상이었다. 캐릭터의 그림을 움직임에 필요한 소재로 만들고, 노트가 흐르고, 갈고리가 뻗어 나오고, 보프가 반응하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음악과 효과음이 붙었다. 생성한 이미지를 코드로 움직이고 소리와 합성한 MP4였다. 이때도 화면의 버튼을 눌러 점수를 얻는 게임은 아니었다. 아이가 보고 싶은 대결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 단계였다.
아이는 그 영상을 보고 다시 설명했다.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달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갈고리는 한쪽 손으로 공격하고, 공격 사이에는 잠깐 쉬기도 하고, 어떤 구간에서는 연속해서 몰아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격하기 직전에 느낌표가 나와서 알려 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냈다.
이 요청을 반영하려면 영상의 길이만 늘려서는 안 됐다. 한 손으로 공격하는 자세가 새로 필요했고, 공격과 쉬는 박자를 다시 나눠야 했다. 캐릭터의 음색과 경고 표시도 달라져야 했다. 그렇게 64초 확장판이 만들어졌다. 아이의 한 문장이 그림을 바꾸고, 다른 문장은 동작과 소리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아이가 처음부터 정확한 프롬프트를 말했는지가 아니었다. 아이는 나온 결과를 보고 자기 의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멋있게’라는 말에서 시작해 어느 손으로 공격할지, 언제 쉬고 언제 연속으로 움직일지까지 정했다. 처음 결과가 다음 설명을 돕는 자료가 된 것이다.
나는 AI에게 질문을 잘하는 능력을 이야기할 때 이 과정을 함께 설명하고 싶다. 첫 문장을 완벽하게 만드는 일에만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결과를 보고 내 생각과 어디가 다른지 알아차리고, 그 차이를 다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날 아이는 자기에게 익숙한 게임의 언어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만든 기록이 다음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나는 이 과정을 홈페이지에 남겨 달라고 했다. 최종 영상만 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길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이가 실제로 어떤 말을 입력했는지, 그 말이 어떤 그림과 동작으로 바뀌었는지 함께 보여 주고 싶었다. 원래 그림과 두 편의 영상, 수정 요청을 한곳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뒤에는 그 주소와 두 개의 ChatGPT 대화 주소를 Codex에 전달했다. 지금까지 수찬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먼저 읽고 파악해 달라고 했다. 아이가 다음 아이디어를 말하기 전에 이전 캐릭터와 움직임, 수정 이유를 이어받게 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내가 AI를 쓰면서 배운 습관이 들어 있다. 다음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처음부터 설명하면, 앞에서 어렵게 정한 조건이 사라지기 쉽다. 이미 만든 그림과 영상, 설명과 대화를 다음 작업의 재료로 넘기면 연결이 수월해진다. 이번에는 제작 기록으로 만든 홈페이지가 그 역할까지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기록이 다음 제작 도구가 읽을 자료가 된 셈이다.
이제 아이는 직접 플레이할 게임의 규칙을 말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캐릭터별 이름과 그림이 있어야 하고, 원하는 상대를 고르면 쉬움·보통·어려움 가운데 선택할 수 있어야 했다. 상대의 기본 난도는 별 하나부터 다섯 개로 구분하되, 플레이할 때 고르는 난이도는 별도로 있어야 했다.
또 박자를 놓치거나 잘못 누르면 HP가 줄어들고, 모두 줄면 게임 오버가 되고,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해적 외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프가 상대를 하나씩 물리쳐 나가는 게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설명을 바탕으로 ‘보프의 리듬 원정대’가 만들어졌다. 모찌, 볼트, 루나, 푸나폰, 녹스라는 다섯 상대가 생겼고, 각 상대에게 세 가지 난이도를 고를 수 있었다. 박자를 누르는 입력에 점수와 콤보, HP와 승패가 연결됐다. 아이가 말한 규칙이 플레이하는 사람의 행동과 결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캐릭터 이름과 모든 세부 설정까지 아이 혼자 정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구조와 원래 해적 캐릭터를 설명했고, AI가 다른 캐릭터와 구현 방법을 제안했다. 나는 앞선 자료를 연결하고 공개할 방법을 요청했다. 각자가 한 일이 결과 안에 함께 들어 있었다.
게임을 만든 다음에는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특징적인 플레이가 들어간 소개 영상도 부탁했다. 수찬이의 상상력이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60초 트레일러에 담고 싶었다. 게임과 트레일러, 그동안의 제작 과정을 한곳에서 오갈 수 있도록 했다.
그날 그림과 두 편의 대결 영상, 실제 게임과 공개 사이트, 트레일러까지 연결됐다. 나는 이 경험을 하루 안에 해봤다고 기록했다. 다만 첫날의 완성이 그 뒤의 모든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다음 날 다시 새로운 요구를 가져왔다.

다음 날 아이는 업데이트를 주문했다
다음 날 아이는 화살표 안에 캐릭터마다 다른 문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정도 넣고 싶어 했다. 다만 함정은 ‘어려움’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엄청 어려움’ 모드에만 넣어 달라고 구분했다. 아이가 무엇을 어렵다고 느끼는지, 어느 단계에서 그 어려움을 주고 싶은지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봇 플레이에 대한 설명도 했다.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거나 영상을 찍을 때 자동으로 플레이하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게임을 직접 하는 것과 게임을 보는 것이 모두 사용 방식이었다. 만들 때부터 감상과 촬영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캐릭터마다 엔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 쉬움 모드도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다섯 캐릭터를 모두 이기면 다음 챕터가 열리고, 그다음에는 메타 세계, 다시 그다음에는 로봇 세계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첫 결과를 보고 난 뒤 아이가 그리고 있는 게임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업데이트된 게임은 세 챕터와 열다섯 캐릭터, 네 가지 선택 난이도를 갖게 됐다. 봇 플레이는 직접 도전한 기록과 구분하도록 만들었다. 자동 연주로 감상한 결과가 자기 힘으로 깬 기록이나 다음 챕터를 여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됐다. 원하는 기능을 넣는 일에는 이런 작은 규칙도 따라온다.
나는 당시 대화창에 이렇게 적었다. 작업을 돌려놓고 수찬이가 “파이팅~~~ 컴퓨터~~” 하고 방에서 나간다고. 이 말은 아이가 컴퓨터를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거창한 분석보다, 그날 우리가 어떻게 작업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다. 아이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설명했고, 컴퓨터가 그것을 만드는 동안 다음 결과를 기다렸다.
여기서 부모인 내 역할을 돌아보게 된다. 아이 대신 게임의 재미를 모두 정하지는 않았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 갔다. 도구를 켜고, 앞선 기록을 전달하고, 게임을 공개하고, 그 과정을 남기는 연결은 내가 맡았다.
아이의 말이 그대로 마법처럼 완제품이 된다고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도구를 옮기고, 구현된 결과를 보고, 의도와 다른 부분을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이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 아이가 자기 언어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다음 기능을 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아이였고, 만들어진 결과는 아이가 다음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이 하루 앞에는 이미 쌓인 시간이 있었다
이번 경험을 설명하려면 그보다 앞선 시간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에도 AI로 게임을 만들어 봤다. 쿠키 어드벤처라는 게임이었다.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하고 싶은지 설명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기록해 Claude Code에 전달했다. 캐릭터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OpenAI 도구도 연결했다.
첫 실행본은 당시에도 몇 시간 만에 나왔다. 아이가 써보니 화면이 잘리고, 캐릭터들이 겹쳐서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아이는 네모난 칸에 하나씩 넣어 달라고 했고, 둥근 캐릭터가 쿠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진저브레드 같은 모양을 원했다. 한 명만 쓰는 대신 여러 명을 함께 배치하고 싶다는 의견도 냈다.
그 뒤에도 수정은 이어졌다. 스킨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림은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름만 다른 것으로는 아이가 생각한 새 스킨이 아니었다. 캐릭터마다 실제로 다른 옷과 모양이 있어야 했다. 가족이 각자의 진행 상태로 즐길 수 있는 프로필과 새 챕터도 추가됐다. 기록에는 다섯 버전으로 발전한 과정이 남아 있다.
나는 이 이전 과정을 약 두 달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두 달 동안 매일 같은 시간씩 개발했다는 뜻도, 첫 실행본이 나오기까지 두 달을 기다렸다는 뜻도 아니다. 처음 만들어진 것을 해보고, 다른 날 다시 생각난 요구를 더하고, 여러 버전으로 바꾸어 간 시간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두 달, 지금은 하루’라는 말만 떼어 놓으면 중요한 부분이 사라진다. 서로 다른 게임과 다른 제작 범위를 같은 시험처럼 비교할 수는 없다. 이번 하루에는 앞서 아이와 내가 해본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아이는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의견을 내는 경험이 있었고, 나는 그 의견을 어떤 도구에 어떻게 이어 주면 되는지 조금씩 익혔다.
9월 말 이 이야기를 강연자료로 정리하면서, 나는 변화의 이유를 AI의 발전 하나로만 설명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된다는 믿음, 아이에게 쌓인 경험, 아빠의 여러 시도도 함께 넣고 싶었다.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경험이 있으면 다음에는 더 구체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도구의 능력이 좋아지는 동안 그것을 쓰는 사람의 기준도 바뀐다.
이전의 내 업무도 단순한 질문과 답변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CES 자료를 정리할 때는 녹취에서 기사거리를 찾고, 사실을 확인하고, 이미지와 슬라이드로 연결하는 절차를 프롬프트에 담았다. 내 말투와 활동 기록을 정리한 ‘디지털 김덕진’ 자료도 만들었다. 개인 에이전트를 쓰기 위해 별도 컴퓨터의 환경을 구성하고 자료를 옮기는 시도도 했다.
7월에는 이미 방송과 연결된 게임 사이트를 만들었다. ‘박정호호의 모험’과 ‘장르만 여의도 3D 풋볼’의 생성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니 아스트라가 나온 뒤 처음으로 AI가 무언가를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최근 크게 느낀 변화는 제작과 수정, 기록과 공개를 이어서 맡길 수 있는 작업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설명할 것을 직접 만들어 보여 주다
방송에 나가면 AI 기술의 변화가 우리 생활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야 한다. 이때 말과 자료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최근에는 ChatGPT Work에서 게임을 만들어 방송에서 보여 주는 일도 했다. 방송에 나오는 인물과 상황을 넣으면, 기술을 설명할 때 그 프로그램의 맥락에 맞는 예시를 함께 보여 줄 수 있다.
솔빛농장은 밭을 갈고 작물을 기르고, 두더쥐에게서 작물을 지키고, 수확물을 팔아 집과 농장과 도구를 키우는 게임으로 시작했다. 이후 안대표와 이프로의 사진을 넣어 방송판을 따로 만들었다. 두더쥐가 더 자주 등장하도록 하고, 게임 화면도 방송에서 보여 주기 좋게 다듬었다.
방송용이라는 조건은 겉모습에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 계속 직접 조작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동 운영 기능을 요청했다. 농사만 자동으로 지을지, 판매와 업그레이드까지 자동으로 할지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방송에서 쓰고 싶다’는 목적이 게임의 기능을 바꾸었다.
직접 보고 나서 고친 부분도 있었다. 작물을 지켜 두더쥐를 퇴치했는데 관련 배너가 화면에 남아 있었다. 그것도 함께 사라지게 해 달라고 했다. 처음 만들 때 모든 불편을 미리 알 수는 없다. 결과를 실제 사용할 상황에 놓아 보고, 그때 드러나는 문제를 다시 설명하는 방식으로 고쳤다.
최욱을 모티브로 한 풋살 게임도 만들었다. 최욱 FC와 눈치 FC가 등장하고, 직접 플레이하거나 자동 중계로 볼 수 있는 형태다. 방송에서 익숙한 인물과 분위기가 게임의 설정과 재미가 됐다. 뉴스헌터스의 PK 게임, 윤태진을 주제로 한 축구 작품 등 다른 시도도 이어졌다.
이런 작업을 하면 AI를 설명하는 나의 준비 방식도 달라진다. 어떤 기능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 더해, 그 기능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만들어 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게임은 결과물인 동시에 설명 자료다. 청중에게 익숙한 주제와 연결하면 어디가 달라졌는지 이야기하기도 수월하다.
제작 과정 자체도 자료로 남겼다. 솔빛농장이 어떤 요청에서 시작해 방송판으로 바뀌었는지 정리하고, 발표자료와 영상, 웹페이지로 이어 갔다. 아들과 만든 게임의 과정을 홈페이지에 남긴 것과 닮아 있다. 한번 만든 것을 다음 설명과 작업에 다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자동으로 게임이 돌아가는 모습과 AI 에이전트가 일을 하는 모습은 구분한다. 농장의 자동 플레이는 만들어진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기능이다. AI가 매 순간 새로운 답변을 생성하며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보여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화면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까지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내가 쓰는 편집툴을 내 일에 맞게 만들다
업무에서 체감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소프트웨어 자체를 만들어 쓰는 경험이다. 나는 강의와 인터뷰, 대담 영상을 자주 다룬다. 원본에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어떤 부분을 덜어낼지 판단해야 하고, 목적에 따라 긴 영상을 줄이거나 특정 주제의 장면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Codex에게 나에게 맞는 영상 편집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영상을 불러오면 발화 내용과 장면을 보고, 내가 말한 맥락에 맞게 필요한 구간을 찾거나 덜어낼 수 있는 도구를 원했다. 한 시간의 영상을 줄이는 일과 짧은 클립을 뽑는 일, 기본적인 수동 편집도 함께 생각했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내가 실제로 쓸 조건을 설명했다. 이미 이용하는 ChatGPT 계정과 Codex를 활용하고 싶었고, 받아쓰기는 로컬 방식으로 시작하되 필요하면 API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기능을 많이 모은 프로그램보다는 내가 가진 환경과 작업 방식에 맞는 도구가 필요했다.
PC에서 만든 프로토타입의 이름은 Context Cut이다. 실행 파일과 소스 코드, 검증 화면과 출력 영상이 남아 있다. 이후 나는 이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맥북에서 Codex와 더 개발했다. 여러 버전으로 바꾸어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후속 버전의 세부 개발 기록은 이 글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내 업무에서 쓰고 있는 도구다.
이 경험은 내게 AI의 쓰임을 조금 다르게 보게 했다. 편집할 때 필요한 조건을 설명해 결과를 받는 일에서 더 나아가, 그런 작업을 반복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한번의 답변이나 파일은 그 작업에서 끝날 수 있지만, 도구는 다음 작업에도 남는다. 쓰다가 다른 필요가 생기면 다시 고쳐 쓸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순간 내 일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남길지, 결과가 의도에 맞는지, 어디서 사람이 판단할지를 계속 정해야 한다. 다른 영상 작업에서는 일반 구민이 볼 강의라는 조건을 주고 학사 안내나 시험 관련 내용을 덜어내도록 했으며, 최종 편집자에게 넘길 지침도 만들었다. AI에게 맡길 부분과 사람에게 넘길 부분을 구분하는 일 역시 내 작업에 포함된다.
아이의 게임과 내 편집툴은 쓰임이 다르지만 반복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필요한 모습을 설명하고, 실제 결과를 써보고, 다음에 바꾸고 싶은 것을 말한다. 아이는 게임의 난이도와 재미를 판단하고, 나는 편집 작업의 흐름과 결과를 판단한다. 우리가 말하는 조건이 점차 우리가 사용할 도구에 들어간다.

흩어진 자료를 이어서 일을 맡기다
콘텐츠 제작에서도 맡기는 단위가 커졌다. 내 이력과 활동을 바탕으로 강의 오프닝 영상을 만들고, 다른 강의에서도 쓸 수 있도록 바꾸고, 사진과 네 권의 책을 반영하고,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요청을 이어 갔다. 그 결과와 제작 과정을 웹페이지에 함께 보여 주는 일도 했다.
Claude와 만든 문서를 ChatGPT로 가져가 행사에 맞는 발표자료로 다시 만드는 일도 있었다. 어느 도구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고 정해 두기보다, 앞에서 만든 결과를 다음 작업의 입력으로 쓴다. 글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그것을 보여 줄 자료로 만드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근에는 강의와 방송 실적을 정리한 엑셀, 캘린더, Slack 대화와 현장 사진, 미팅 기록을 함께 살펴 제안서를 만드는 작업도 했다. 각각의 기록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특정 기업에 어떤 협업을 제안할 수 있는지 설명하려면 서로 연결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와 상대에게 무엇을 제안하려는지를 같은 문서 안에서 보여 주려는 것이다.
출장 준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CES 항공권을 알아볼 때 가격만 물어보지 않았다. 미디어데이에 참석해야 하고, 귀국 뒤에는 개인 약속이 있으며, 나와 스태프의 돌아오는 날짜가 다를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합류하는 인원과 렌터카, 숙소 인터넷, 하루쯤 쉴 수 있는 여유까지 함께 고려했다.
비행기 표가 싸다고 무조건 좋은 일정은 아니다. 며칠 일찍 출발하면 항공료는 내려가도 숙박비와 차량비, 체류비는 늘어날 수 있다. 전체 비용과 취재할 수 있는 시간, 몸의 부담을 함께 비교해 달라고 했다. 아직 예약과 발권까지 끝낸 성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AI에게 전달하는 문제의 모양이 달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전에도 이런 조건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곳에서 찾은 정보를 모아 다시 계산하고 비교하는 일을 더 넓게 맡겨 보게 됐다. 그만큼 나도 무엇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인지, 무엇은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내 사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수록 결과를 검토할 기준도 분명해진다.
수닷이 회사의 대화 안으로 들어오다
닷 기능을 켜고 개인 에이전트에 ‘수do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전에도 별도 컴퓨터에 개인 에이전트 환경을 만들어 보았고, 매주 특정 조건의 입찰공고를 정리하게 하는 반복 작업도 시도했다. 닷을 켠 날 갑자기 지속적으로 일하는 AI를 처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미 원하던 사용 방식을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대화창 하나의 답변보다 그다음까지 이어지는 일이었다. 당일 방송을 준비하고, 이후의 방송과 강의도 일정에 맞춰 챙기는 담당 역할을 주고 싶었다. 다만 역할을 정해 주었다는 것과 그 역할이 매번 안정적으로 수행됐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지금은 구체적인 작업을 맡기고 결과를 확인하며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슬랙에 연결한 뒤에는 변화가 더 선명해졌다. 회사의 강의 공지와 업무 대화가 있는 그 자리에서 수닷을 부를 수 있게 됐다. 정보를 다시 모아 별도의 대화창에 옮기기 전에, 이미 쌓인 스레드를 읽고 현재 조건을 파악하도록 요청할 수 있었다.
한 강의의 커리큘럼을 부탁할 때도 전체 문맥이 중요했다. 대화 초반의 시간과 뒤에서 확정된 시간이 다를 수 있고, 대상과 회차가 바뀔 수도 있다. 실제 요청에서는 나중에 정리된 3시간 조건을 기준으로 초안이 나왔다. AI가 일반적으로 그럴듯한 강의안을 만드는 것과, 이 스레드에서 지금 확정된 강의안을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일정 정리에서도 행사일만 나열해서는 도움이 충분하지 않았다. 강의 전에 소개영상을 보내야 할 수 있고, 교안이나 사전 자료의 마감은 행사보다 빠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강의와 세부 업무 마감을 함께 정리하도록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 강의를 한다’는 목록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 가까웠다.
이미 끝났는데 완료 표시가 빠진 강의를 찾아 달라고 한 일도 있다. 날짜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취소된 건이 있을 수 있고, 강의는 끝났지만 후속 자료나 정산 확인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수닷은 과거 대화의 흔적을 바탕으로 후보를 분류했고, 나는 그 목록을 보고 처리하도록 승인했다.
첫 열 건, 다음 일곱 건에 완료 표시를 반영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때의 열일곱 건은 슬랙 글의 완료 표시를 정리한 수다. 열일곱 개의 강의를 AI가 수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범위를 정확히 말해도 변화는 충분히 설명된다. 과거의 대화를 읽고 지금의 상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받고, 내가 확인한 다음 필요한 표시까지 이어서 처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CES2025와 CES2026의 기록을 읽고 다음 행사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도 물었다. 동료에게 수닷을 불러 사용해 보라고 권했고, 동료의 AI 비서인 알프레드와 내 에이전트를 같은 공간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둘이 어떤 역할을 나눌 수 있을지 시험하는 단계다. 아직 둘이 스스로 대화를 이어 가며 프로젝트를 끝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게 슬랙의 변화는 AI가 회사에 쌓인 기록을 다음 일을 위한 자료로 읽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예전의 수정 요청과 확정 조건, 감사 회신과 후속 질문은 지나간 대화이면서 현재를 판단하는 단서다. 그 맥락을 함께 읽게 되면 AI에게 맡길 일도 달라진다. 무엇을 써 달라는 요청에 더해, 무엇이 남아 있는지 찾아 달라는 요청이 늘어난다.
뮤즈에게는 내 일정과 받은편지함을 함께 보게 했다
최근에는 메타의 뮤즈도 시험하고 있다. 같은 사람의 생활과 업무 안에 다른 AI를 넣어 보면 어떤 도움을 주는지 비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닷은 회사 슬랙과 강의 준비에서 구체적인 사례가 쌓였고, 뮤즈는 개인 일정과 메일, 출장 탐색에서 경험이 쌓이고 있다.
뮤즈에게도 CES 항공권을 알아보게 했다. 캘린더의 일정을 참고하되, 귀국 후 예정된 개인 일정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일정은 조정할 수 있다고 우선순위를 주었고, 항공료가 비싸면 조금 일찍 나가거나 다른 항공사로 경유하는 방안도 보도록 했다.
화면에서는 뮤즈가 브라우저로 항공편을 조회하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대화로 후보만 제시하는 것에서 웹사이트에 조건을 넣고 찾아보는 과정까지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장면을 발권이 끝난 것처럼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탐색과 비교를 시험했고, 실제 예약과 결제는 별개의 단계다.
이전 CES 대화에 이어 등록 준비사항을 점검하자는 제안이 나타난 적도 있다. 받은편지함의 보안 관련 공지나 협업 제안을 요약해서 알려 준 화면도 남아 있다. 이런 경험에서는 문장을 얼마나 잘 쓰는지보다 내가 놓칠 수 있는 것을 짚어 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제안된 내용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새 AI를 쓸 때마다 나를 처음부터 설명하는 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뮤즈 화면에는 다른 AI가 알고 있는 개인 맥락을 정리해 가져오는 방법이 안내돼 있었다. 그 화면만으로 내 모든 맥락이 성공적으로 옮겨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왜 이런 기능이 필요한지는 이해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무엇을 우선하는지 설명해 놓은 기록이 점점 중요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어느 쪽이 전반적으로 더 좋다고 결론내릴 생각은 없다. 내가 맡긴 일이 다르고 확인한 범위도 다르다. 내게 도움이 되는 비교는 이름이나 인상만으로 순위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일상에서 어떤 상황에 유용했고 어디에서 내 확인이 더 필요했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아스트라 이후 나의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 그것을 한 모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모델이 뜻을 이해하고 계획하는 능력, Work와 Codex가 실제 파일과 코드를 만들고 실행하는 환경, 앞선 결과를 다음 작업에 전달하는 방식이 함께 작동한다. 여기에 나와 아이가 시도해 본 시간도 쌓여 있다.
변화가 선명하게 보이는 곳은 요청의 끝이다. 오프닝 영상을 만들었다면 다른 강의에서 쓰도록 고치고, 제작 과정도 웹페이지에 담는다. 방송 게임을 만들었다면 자동 시연 기능을 더한다. 아이의 그림은 영상과 게임으로 이어지고, 만들어진 게임은 다음 날 새 규칙을 받아 업데이트된다. 내 업무에 필요한 기능은 반복해서 쓸 편집툴이 된다.
이런 사용에서는 내가 판단할 일이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결과인지, 어느 부분이 의도와 다른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지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슬랙에서는 무엇이 완료됐고 무엇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출장에서는 가격 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정과 부담을 설명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다. AI가 그림과 코드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서 아이가 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캐릭터를 원하는지, ‘어려움’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느 모드에 함정을 넣을지 결정한 흔적이 결과에 남아 있다. 나는 아이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음 말을 어떻게 바꾸는지 함께 볼 수 있었다.
앞으로 AI가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는 일은 더 중요해질 것 같다. 한 번 잘 설명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해보고 나서 다시 말하는 능력이다. 결과를 만져 보고,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차이가 이해되게 말하는 과정이다.
요즘 내가 업무와 일상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그 과정을 더 자주 이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일이 한번에 잘돼서가 아니다. 다음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결과가 생기고, 그 결과를 다음 작업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AI에게 맡기는 일의 범위가 커질수록, 내가 무엇을 결정하고 싶은지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아들이 컴퓨터를 응원하고 방을 나간 장면 뒤에는, 다음 날 다시 설명할 말들이 남아 있었다. 나도 그렇다. 편집툴을 쓰다가 필요한 기능을 발견하고, 슬랙의 업무를 보다가 다음 기준을 생각하고, 방송을 준비하다가 보여 줄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 그때 다시 대화를 연다. 내 일과 가족의 시간 안에서 AI는 그렇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 관하여
2026년 10월 1일까지 확인한 제작 기록과 본인의 설명을 바탕으로 쓴 1인칭 원고다. 10월 2일 공개용으로 편집했다. 길에서 나눈 대화는 당시 남긴 회고를 바탕으로 서술했으며 새 현장 대사를 만들지 않았다. 등장하는 이미지와 영상은 실제 제작 산출물과 화면이다.
관련 게임과 사이트, 영상은 이 아카이브의 프로젝트와 자료실에서 이어 볼 수 있다.